朝鲜大百科全书选译 | 朴正熙射杀事件

朴正熙射杀事件 朴正熙被自己的心腹、傀儡中央情报部长金载圭开枪打死的事件。

1979年 10 月 26 日朴正熙参加金载圭在傀儡中央情报部餐厅摆设的“晚餐会”。参加宴会的有“中央情报部长”金载圭、“青瓦台警护室长”车智澈和“总统秘书室长”金桂元。在用餐后的交谈中,金载圭和车智澈之间发生了严重的争吵(本来以朴正熙、车智澈为一方的强硬派和金载圭、金桂元为另一方的稳健派之间的意见对立正在激化,但每当两方发生意见冲突,金载圭就会成为攻击的对象,并在之后要进行的“要职”改编中被指名为除外对象)。一直伺机的金载圭走了出去,确认了傀儡中央情报部“仪典室长”和“随行秘书官”的准备状态后,去取了保管在自己办公室里的手枪,再次回到“晚餐会”现场。他突然掀翻餐桌,拔出枪,向车智澈和朴正熙各开了两枪。这时金载圭的两个部下待在厨房,射杀了以朴正熙的“警护处长”和“警护课长”为首的 5名警护员。朴正熙射杀事件是南朝鲜急剧激化的政治经济危机和社会混乱的直接产物。主体 68(1979)年4月起,YH 贸易公司的工人斗争,以汉城、釜山、马山、光州为首的南朝鲜各地爆发的革命及人民的反“政府”斗争陆续发生,动摇了“维新”独裁体制的根基。因这样的事态,美帝更加认定朴正熙是无用的存在,为事先阻止南朝鲜殖民体制的根基遭到动摇,便通过操纵将其杀害。在美帝操作的这起射杀事件下,长达 18 年的朴正熙独裁就此告终。

事件现场。右上角是车智澈的尸体。图由公众号编辑选配。

宫井洞厨房。

박정희사살사건 박정희가 자기의 심복이였던 괴뢰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죽은 사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괴뢰중앙정보부식당에서 김재규가 차린 《만찬회》에 참가하였다. 여기에는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청와대경호실장》 차지철, 《대통령비서실장》 김계원이 참가하였다. 식사를 다하고 서로 말을 주고 받던 중에 김재규와 차지철사이에 심한 말다툼이 벌어졌다(원래 박정희, 차지철을 한편으로 하는 강경파와 김재규, 김계원을 다른 편으로 하는 온건파사이에서는 의견대립이 격화되고있었는데 두 파간의 의견충돌이 있을 때마다 김재규는 공격의 대상으로 되고있었을뿐아니라 이것으로 하여 앞으로 있게 될 《요직》개편에서 제외대상으로 지목되고있었다). 기회를 엿보던 김재규는 밖에 나와 대기시켰던 괴뢰중앙정보부 《의전실장》과 《수행비서관》의 준비상태를 확인한 다음 자기 사무실에 보관하였던 권총을 가지고 《만찬회》장에 다시 들어갔다. 그는 갑자기 식탁을 넘어뜨리면서 권총을 뽑아들고 차지철과 박정희에게 각각 두발씩 발사하였다. 이때 김재규의 두 부하가 주방에 있던 박정희의 《경호처장》과 《경호과장》을 비롯한 경호원 5명을 사살하였다. 박정희에 대한 사살사건은 남조선에서 급격히 격화된 정치경제적위기와 사회적혼란의 직접적인 산물이였다. 주체68(1979)년 4월부터 계속된 와이에취무역회사 로동자들의 투쟁과 서울, 부산, 마산, 광주를 비롯한 남조선 곳곳에서 벌어진 학생들과 인민들의 반《정부》투쟁은 《유신》독재체제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다. 이러한 사태에서 미제는 박정희를 더는 쓸모없는 존재로 인정하고 남조선의 식민지체계가 밑뿌리채 뒤집히는것을 사전에 막기 위하여 그를 사살하도록 조작하였다. 미제에 의하여 조작된 이 사살사건으로 하여 18년에 걸친 박정희독재는 종말을 고하게 되였다.